-
바에서 00년생 여성 근로자를 만난 이야기1일 1포스팅 잡설 2020. 11. 28. 14:15
나 김백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. 신입생 시절 술게임 중 과음했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오면서 알콜해독 수치가 0으로 돌아갔다. 어쩌다 주변 사람들이 마시자 할때는 기분 상 1~2잔 마시긴 하지만, 혼자서는 전혀 마시지 않는다.
그런 내가 어쩌다보니 바에 가게 됐다. 나이 30 먹기 전 친한 형님들과 처음으로 간 바. 술 마시는 곳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 술집이 굴러가는지 궁금했다.
기억을 돌이켜보며, 어제 있던 바에서의 이야기를 기록해본다. 거기서 느꼈던 미묘한 감정들까지도.
*성매매 등 불법적인 접촉 전혀 없었으며, 마스크 쓰기 및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준수했음을 미리 밝힙니다.
[1]
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휴대폰을 만지는 여성분들이 보인다. 여기서 일하는 분들인지, 우리를 반겨준다. 남자 셋을 반기는 여성 근로자 다섯분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. 적어도 겉 표면 상으로는.
무난한 맥주와 안주를 시킨 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. '여기 몇차냐', '어쩌다 알게된 사이냐', '주량은 어떻게 되나' 등 표면적 인사치레가 이어졌다. 여성 근로자분들은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각자 준비한 몸매와 얼굴을 어필하기 시작했다.
이런 분위기가 남자로써 싫지는 않았다.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안쓰럽고 안타까웠다. 저들은 어떤 연유로 여기서 일을하게 된 걸까. 술과 담배를 아주 좋아하던데 어쩌다 그렇게 된걸까. 저들에게 술/담배/남성은 어떤 의미일까.
고향 이야기, 직업/직장 이야기 등이 나오던 중 술이 나왔다. 그렇게 첫 잔은 3:5로 다같이 짠.
[2]
소모임을 통해서 알게된 사람들이고, 그래서인지 다들 인상이나 느낌이 비슷하다. 바에서 일하는 여성근로자 입장에서 이런 경우 흔치 않을텐데,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는 게 신기했다. 고맙기도 했고.
'저들에게 있어 책은 어떤 느낌일까'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.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문제없어진 지금, 바에서 일하는 것이 저들에게 어떤 의미인지. 술/담배/남성 등 원초적 즐거움에 비해, 책은 얼만큼의 비중을 갖고 있는지.
그러던 중 시니어급 여성근로자가 말한다. '나는 책 읽어도, 그걸 써먹지 못하고 까먹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거 같더라. 머리아파'
이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했다. 그 생각은 정확히 내가 학부시절 느꼈던 바와 동일했기 때문에. 만약 책읽는 습관을 2019년에 들이지 않았다면,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. 그래서 지금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고맙고 '더 잘 대해야겠다' 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.
때마침 안주가 나왔다. 잘 익은 소세지와 레몬이다. 각자 잔에 레몬을 뿌리고 또다시 3:5로 짠.
[3]
이 바에는 00년생 여성근로자가 있었다. 누가봐도 앳되어보이는 한명이 과한 화장으로 '나 10대 아니거든요'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, 아니나다를까. 역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비슷한가보다.
이 여성은 특이하게도 웹툰을 매우 좋아했다. 자기가 요즘 어디서 웹툰을 보고, 그게 왜 재미있는지 술술 풀었다. 특히 최근 '카카오페이지' 에서 어떤 걸 보는지, 네이버 웹툰은 어떤 게 유행하는지 줄줄 말해주었다. 한때 네이버/카카오 소액주주이자 지금도 관심을 가진 투자자로써 그 말에 자연스럽게 귀가 기울여졌다.
안타까운 것은, 웹툰이야기가 본인이 아는 전부였다는 것. 웹툰 이야기가 끝나자 어떤 이야기에 끼어들어 맞장구를 칠지 어려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. 바에서 일한다는 게 이런 이야기 듣고 술동무 해주는 역할일진대, 이야기 호응을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겠나.
그러던 중 98년생 여성근로자는 맥주를 그냥 남겨놓고 아이폰을 꺼내 이것저것 자기할 일을 보고 있었다. '소주는 괜찮은데, 맥주는 마시면 힘만 빠진다' 는 나름의 포장된 말을 꺼내며 억지웃음을 지어보인다.
씁쓸했다. 본인이 즐거워서 짓는 표정이 아닌 거 뻔히 다 보이는데도, 똑같이 웃어줘야 하는 상황이니까. 손님인 내가 뭐라 한마디 하면 저들은 또 힘들게 오늘하루를 보낼 게 분명하다. 다만 돈을 내는 소비자로써 이런 것 까지 신경쓸 의무는 없고.. 저들과 굳이 엮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웃음지으며 술자리를 끝냈다.
그렇게 나온 빌지에는 맥주값으로만 10만원이 나와 있었다.
[4]
편의점에 와서 간단히 해장음료를 들이켰다. 이 기분나쁜 감정과 술기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. 2+1에 1만원짜리 음료수를 한번에 모두 마시고 바람을 쐤다. 상쾌함이 온몸에 파고든다.
'일 하느라 고생이 많더라 저분들'
같이 간 형님 중 한분이 말한다. 내가 생각하고 느끼던 바를 정확히 짚어주면서 포문을 열길래 참 고마웠다. 그래서 오히려 저들을 위로하는 말들을 꺼냈다. 진심은 그게 아니지만, 형님도 그정도는 아실것이라 확신했기에.
'그래도 열심히 응대하려 노력하는 것 같던데요? 사람 대 사람으로 이런저런 감정이 들긴 했지만.'
그렇게 우리는 각자 무슨말을 하려는지 눈치채고는 내 자취방에 들어와 잠시 쉬었다. 당연히 차는 대리운전을 불렀고, 대리비도 넉넉하게 드렸다. 술이 들어갔더니 이야기가 술술 나오더라.
종교/온라인 커뮤니티/여성관/결혼관/부업/재테크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. 바에서 여성근로자분들을 만나 이야기할 때 보다 더 자유롭고 기분좋은 느낌이 들었다.
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2시. 각자의 집으로 향한 뒤 씻고 침대에 누워 기도했다.
'유흥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분들 중,
단 한명이라도 내 사업/서비스를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길.'
'
지식의 힘을 믿고 실천하는 단 한명에게,
나의 자산들이 절실하게 도움될 수 있길.'
'그렇게 한명한명이 모여 우리나라 사회를/동북아시아를/세계에
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조직이 되기를.'
[5]
'요즘은 네이버웹툰이 콜래보 많이 하더라고요. '나랑 같이 걸을래' 노래 듣는데 완전 내스타일!'
이 말이 아직도 머리에서 맴돈다. 아무래도 이런 거 보면, 주식투자는 내 천직이 맞긴 한가보다. 오늘은 전철에서 네이버 다음카카오 JYP SM 빅히트 기업보고서 PDF를 읽어보려한다. 엔터랑 웹툰 중 저평가된 곳이 어디인지 살펴봐야지.
'1일 1포스팅 잡설' 카테고리의 다른 글
후회없는 연애를 원한다면 '이것' 을 기억하라 (2) 2020.12.08 영화 더 프롬 리뷰: 이 시대 사회인을 위한 영화 (2) 2020.12.06 20대 남성의 '튤립' 앱 사용후기 (4) 2020.11.20 결혼에 대한 생각 (4) 2020.08.19 명상하는 법 (0) 2020.07.21